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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자기에 달린 묵서

BOJAGI #01

보자기에 달린 묵서

우리 삶과 함께한 묵서

공장에서 찍어낸 물건이라 하더라도 누군가의 손 글씨가 더해지면 세상에 하나뿐인 물건이 된다. 받는 이가 특별한 물건으로 여기길 바라면서 사람들은 선물하는 물건에 글귀를 새겼다. 물건에 글귀를 새기는 방식 중 하나인 ‘묵서(墨書)’란 말 그대로 먹으로 글씨를 쓰는 일 혹은 그 글씨를 말한다. 조선시대에 각 관청에서 나라에 바치는 물건을 기록하는 문서 형식 역시 묵서라 했다. 옛날에는 먹으로 글을 썼으니 모든 문서를 묵서라 할 만하다.

특별히 전해지는 묵서 중에는 기록을 중시한 왕실 문화를 기록한 것이 많다. 왕실에서는 다양한 의례의 절차를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히 기록했는데, 행사에 쓰인 기물과 음식까지 기록한 덕분에 그 기록만 보고도 의례가 어떻게 치러졌는지 알 수 있을 정도다. 예를 갖추는 과정 하나하나가 그 시대 사람들에게는 무척이나 중요했다. 지금 우리가 삶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순간순간을 그림과 사진, 글과 같은 것으로 집요하게 기록하는 것처럼 그들에겐 의례가 그러한 순간이었다.

국가적 의례 중에서도 혼례는 조선 왕실의 가장 큰 경사였다. 엄격한 절차에 따라 거행한 혼례를 위해 다양한 물건을 세심하게 준비했다. ‘혼수발기’를 통해 이를 들여다볼 수 있는데, ‘발기’란 사람이나 물건의 이름을 죽 적어놓은 글을 말하는 것으로, 혼수발기는 장신구와 의복, 살림살이 등 혼례를 위해 준비한 품목을 적은 묵서다. 우리에게 전해 내려온 혼수발기로 단연 많이 알려진 것은 ‘덕온공주혼수발기’다. 순원왕후가 조선의 마지막 공주인 덕온공주에게 준 것으로, 5m가 넘는 길이에 온갖 혼수품이 기록되어 있다. 덕온공주는 아버지 순조가 세상을 떠나고 3년상을 치른 뒤에 준비해 혼례를 올렸다. 당시 공주에게 남은 가족은 어머니인 순원왕후뿐이어서 혼례는 순원왕후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이 혼수발기는 하나 남은 막내딸의 혼례를 준비한 어머니의 기록이기도 하다. 어머니 순원왕후는 이 소중한 물건들을 포장하는 보자기 하나하나에도 묵서를 달았다. 색과 재질, 크기가 다양한 보자기를 만들어 혼수용품을 포장했는데, 내용물의 크기나 수량 등을 보자기에 적거나 끈에 적어 매달았다.

물건에 새긴 글은 그 모양이 조금씩 마모되고 빛이 바랜다. 그러나 의미는 왠지 더 진해지는 듯하다. 그 강인한 생명력과 함께 글을 쓴 이의 마음도 물건에 깃들어 영원토록 전해지는 것이 아닐까. 소중한 물건을 감싸는 보자기에 묵서를 단 것도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진 1 - [노리개보]
모서리 한쪽에 묵서가 적혀 있다. 그 내용으로 보아 옥으로 만든 불수감(佛手柑), 산호로 만든 목련, 공작석으로 만든 매화가 달린 삼작노리개를 쌀 때 쓰던 보자기임을 알 수 있다.

사진 2 - [은시접보]
자색 명주 겉감에 달린 유록색 끈에 ‘은시뎝삼좌’라는 묵서가 적힌 종이가 묶여 있던 보자기. ‘시뎝’은 수저를 담아놓는 그릇인 시접을 말하는 것으로, 은시접 세 벌을 쌀 때 사용하던 보자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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