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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과 안녕이 담긴, 약함藥函

CRAFT & ARTISAN #06

건강과 안녕이 담긴, 약함藥函

집집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구급상자에는 주로 빨간 십자가와 함께 FIRST AID KIT라고 적혀 있습니다. 비상약이나 상비약을 한데 모아둔 함 자체가 서양에서 전해진 것이 아닐까, 오해하게 만드는 이름과 생김새입니다. 물론 겉에 뭐라고 쓰여있든 간에 어쨌든 집에 그 구급상자 하나 있으면 온 가족의 마음이 한결 든든합니다. 열이 나도, 손이 베어도, 체해도 그 약통 하나면 안심입니다.

오래전 우리나라에도 이런 구급상자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아무도 그 이름조차 모르고 살고 있지만, 지금의 구급상자의 역할을 우직하게 해오던 물건이 바로 ‘약함’입니다. 쉽게 살 수 있는 약 다운 약이 시판되기 전에는 약재를 보관했고, 그 이후 지금의 우황청심환이나 까스활명수 등 ‘상비약’의 개념이 생기기 시작한 이후에는 알약이나 물약, 빨간 약과 솜 등을 담아 보관하던 것이 바로 약함입니다. 이 약함에 대해 더 알아보기 전에, 우선 우리나라의 소가구 중 지금의 ‘보관 상자’처럼 쓰이던 궤, 함, 그리고 통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드릴까 해요.

사진 1 - [궤, 함, 통]
궤, 함, 통은 모두 일상에서 즐겨 쓰는 물품을 넣어 보관하는 상자류를 말합니다. 생김새로 구분 을 해보자면 함은 상부 전면을 뚜껑으로 만들어 여는 것, 궤는 상부를 두 면으로 나누어 경첩을 달아 열고 닫는 형태를 말합니다. 통은 주로 원형으로 된 붓통이나 문서 통 등이 해당됩니다. 궤 중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은 돈궤, 패물궤, 문서궤, 책궤, 옷궤 등이 있고 농가에서 곡식을 저장하는 용도로 쓰이던 것에는 뒤주가 있습니다. 돈, 패물, 곡식 등 집안의 재산이 되는 것들을 담아 보관하던 목적에 걸맞게 자물쇠가 달린 형태가 많았다고 합니다.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함은 단조로운 생김새에 뚜껑을 손쉽게 여닫는 형태가 많았고, 잘 알려진 용도로는 보석함, 실함, 바느질함, 문서함 등이 있습니다. 담긴 것들이 주로 자그맣고, 가벼운 것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 전해지는 약함의 자료를 찾아보면 크기가 대체로 작습니다. 우리가 알아보려는 약함도 이 ‘함’ 중의 하나입니다.

사진 2 - [약함藥函]
① 첫 번째로 알아볼 약함은 여섯 칸으로 구획되어, 약재를 보관하던 미닫이 형식의 함입니다. 각 모서리의 부분에는 고춧잎형 감잡이를 대어 장식성을 더했고, 표면과 내부에 칠이 되어 있습니다. 단정하게 나뉜 내부의 칸마다 효능에 따른 약재를 나누어 보관했을 모습은, 오늘날의 구급함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출처 : 국립민속박물관 , 소장품번호 : 038073, 국적/시대 : 한국-조선, 크기 : 가로18, 세로28, 높이10)

② 두 번째 함은 약을 분류해서 보관하는 상자였습니다. 뚜껑 윗면에 사람 얼굴과 ‘개씨바리약, 이명래, 고약, 우황청심원’ 등이 적혀 있는데, 개씨바리는 강원도 말로 눈병을 지칭한다고 합니다. 뚜껑을 열지 않아도 안에 무슨 약이 들어 있는지 적어둔 것이 정겹기도 하지만, 수많은 약의 종류를 하나씩 읽고 있으려니 어떤 병이 와도 거뜬할 것만 같은 든든함이 동시에 느껴지기도 합니다.
(출처 : 국립민속박물관, 소장품번호 : 민속087924, 국적/시대 : 한국, 크기 : 가로13, 세로38, 높이13)

사진 3 - [아무 약 말고, 귀한 약 담아두는 약함]
몇 해 전, TV 쇼 진품명품에 오래전 ‘약함’이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단정한 목함의 모습을 보면서 문득 왜 우리는 더 이상 저 약함을 쓰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아프지 않아도 언제든 아플 것을 대비하여 잔뜩 챙겨 놓고 사는 ‘보통 약’ 말고, 건강하려고 매일 챙겨 먹는 ‘나만의 약’ 혹은 ‘귀한 약’은 저런 목함에 담아두고 꺼내어 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목함에 정성스레 보관해 두었다가, 달그락 소리를 내며 목함을 열어 약을 꺼내는 행위 그 자체로 내 몸을 귀히 여기는 태도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사진 4 - [호호당의 약함과 약을 위한 기물]
그 마음이 이어져 호호당의 약함을 준비했습니다. 가장 큰 목적은 ‘약함’이라는 한국의 오랜 기물의 존재를 많은 이들과 나누고자 함이었습니다. 호호당은 약함이 지닌 상징적 의미를 오늘날의 시선으로 재해석하여 호두나무 목함을 제작하였고, 안쪽은 한약이나 알약, 봉지 약 등 다양한 크기의 약을 편하게 나누어 담을 수 있게 칸을 나누어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약함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인 ‘내 몸을 위하는 시간’에 집중할 수 있는 약을 위한 기물을 함께 준비했습니다. 한 포의 한약을 담기에 적당한 컵과 쓴맛 가시게 해줄 사탕 한 알 담을 접시. 혹은 알약 담을 접시에 물 담을 컵. 무엇이 담기든 내 한 몸 살뜰히 살피는 귀한 시간으로 만들어 줄 아름다운 도자기였으면 했습니다.

건강한 신체에 대한 김혜정 작가의 해석 :
서울 북한산 기슭의 작업실에서 도자기를 굽는 김혜정 작가는 그릇 하나하나를 물레로 성형한 후 섬세한 변형과 유약 처리를 하고 소성 완성합니다. 그는 지난 20여 년간 끊임없는 구도자적 정신으로 우리 고유의 단아한 선과 색을 활용하며 도자기를 만들어 온 작가로서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공예·디자인문화 진흥원에서 시상한 ‘2022 올해의 공예상’을 수상했습니다. 호호당 약함을 위해 김혜정 작가가 제작한 <보조개 컵(Dimpled Cup)>과 알 약을 담기 위한 접시 <심피 (Carpel 心皮)>는 작가가 오랫동안 제작해 왔고 평소에 그의 부모님과 가족들도 애용하는 그릇들입니다.김혜정 작가는 물레로 만드는 도자기 형태들은 모두 물레 회전의 중심에 맞아야 하고, 몸통처럼 앞뒤와 안팎이 있어, 예로부터 도공들이 굽다리, 배, 어깨, 입술 등의 신체 부위로 도자기 형태를 부른 것으로 알 수 있듯이 그릇의 미는 유기적인 균형 안에 있다고 말합니다. 보조개 컵은 김혜정 작가가 하나하나 손으로 굴곡을 만들어, 사람 몸의 중심인 배꼽이나, 미소 짓는 얼굴에 생기는 보조개처럼, 건강한 신체적 이미지를 그릇에 살린 디자인입니다. 한편, 그의 작품 <심피 Carpel 心皮>는, “지구의 순환, 미래지향적인 태도, 자연 친화적인 생활 방식의 회복’”등의 주제를 담아 10여 년 이상 계속해오고 있는 시리즈로서, 2020년에는 로에베 공예상 파이널리스트로 선정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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